게이트의 시작
2016년 겨울 광장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지도부 없는 100만 인파가 서로 토론한 적도 없이 고도의 합의와 규율을 유지했습니다. 주권자의 압박으로 12월9일 국회는 재적 인원 300명 중 234명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습니다. 2017년 3월10일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읽어 내렸습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5월9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한 박근혜 정부 주요 인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뇌부들이 재판에 줄줄이 넘겨졌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을 기억하십니까? 2016년 7월24일, ‘미르’라는 생소한 재단에 재벌 대기업들이 거액을 몰아주었다고 <TV조선>이 보도했습니다. 8월2일 <TV조선>은 대기업들이 ‘K스포츠’라는 이름의 재단에도 같은 방식으로 거액을 몰아주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세간의 관심이 쏠리지 않았습니다. 9월20일 ‘K스포츠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한겨레> 보도로 ‘최순실’이라는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고 최태민씨 딸이자 정윤회씨 전처인 최순실씨가 두 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이 개입한 전모가 속속 드러났습니다.

2016년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주최측 추산 약 190만 명이 모였다.
2016년 10월24일,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일부 수정했다는 의혹을 <JTBC>가 보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사로운 통치가 폭로되었습니다.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에 최순실씨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라는 1차 대국민 담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비선의 국정 개입 의혹은 메시지, 외교안보, 인사, 예산 등 사실상 국정 전부에 걸쳐 폭 넓고 심도 있게 제기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대기업에게 거액 모금을 사실상 지시해 최순실씨 기업의 이익 창출을 적극 지원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보수와 진보 모두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11월4일 2차 담화에 이은 11월29일 3차 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퇴진 시점을 국회가 정해 달라”라고 했지만, 이후 주권자의 뜻을 받든 입법부가 탄핵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헌재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박근혜 게이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죄 혐의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세 차례 독대하면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결정적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청와대가 도울 것을 요청했고, 청와대는 국민연금공단이 이 합병에 찬성하게 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들어주었으며, 그에 대한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독일 승마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최씨 독일 회사에 거액을 지원했다는 의혹입니다. 2016년 9월 정유라씨 지원 의혹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삼성은 부인했습니다. 송금 내역이 드러나자 삼성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차원에서 한 지원이라고 했고, 이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로 지원했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2017년 2월17일 뇌물 공여 등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은 8월25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어 가결된 2016년 12월9일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 표결 통과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탄핵안은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여해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반대와 기권은 각각 56표와 2표였고 무효표는 7표 였다.
‘박근혜 게이트’의 범위는 사립대 시스템, 대통령 의료, 세월호 참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전방위에 걸쳐 확산되었습니다. 최씨 딸 정유라씨가 체육특기자로 이화여대에 입학하고 재학하는 동안 각종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통령 자문의 자격이 없는 의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미용 성형시술을 하는 등 대통령 진료도 비선이었다는 의혹이 떠올랐습니다. 헌재가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다시 도마에 올랐고 청와대는 참사 2년 7개월 만에 ‘그날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다’는 브리핑을 해야 했습니다. 2016년 11월 출범한 박영수 특검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사건을 파헤쳤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사IN>은 검찰과 특검이 압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57권 전권을 입수해 분석·보도한 유일한 매체입니다. 안 전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 2014년 6월부터 구속되기 직전인 2016년 10월까지 쓴 업무수첩입니다. 이 ‘박근혜 실록’에는 최순실씨가 요구하면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해 실무가 굴러가는 패턴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박근혜 정부 국정 전반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시사IN> 특별취재팀은 앞서 안 전 수석 업무수첩 12권(2015년 7월~2016년 10월) 보도로 2017년 1월 제317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기자상 심사위원회는 “이번 게이트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스모킹 건’ 중 하나를 제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 이미지
‘삼성-최순실 커넥션’을 뒷받침할 내부 문건, 카카오톡, 이메일 등 이른바 ‘최순실 파일’ 1379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 것도 <시사IN>입니다. 이 외에도 최순실 일가가 사용하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으며,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 업무수첩과 김영한 전 수석 업무일지 역시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검찰 진술 내용을 상세히 취재해 삼성의 말바꾸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2016년 9월 마지막 주에 발행한 <시사IN> 제472호에서 처음으로 최순실씨의 얼굴 사진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사진으로 조남진 <시사IN> 사진 기자가 제314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사IN>은 박영수 특검 수사 기간 내내 ‘특검 브리핑 IN’을 온라인에 연재했으며 현재는 ‘박근혜·최순실 재판 중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게이트’는 등장인물이 많고 여러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어 한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박근혜 게이트’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시사IN>이 별도 프로젝트 페이지를 구성했습니다. <시사IN>이 보도한 기사와 박근혜 게이트 관련 수사·재판 자료 등을 한데 모은 이 페이지는 그 자체로 ‘적폐실록’이자 ‘박근혜 게이트 아카이브’입니다. 기록의 힘을 믿는 <시사IN>은 ‘박근혜 게이트’를 끝까지 기록하겠습니다.

2016년 12월3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부산촛불집회가 서면 중앙로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전국적으로 232만명이라는 최대 규모의 집회가 진행된 가운데 부산에서만 2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모여 대통령 3차담화 이후 즉각 퇴진과 국회의 탄액을 촉구했다.